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신 직후에 주시는 첫 말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열둘 중 하나로 뽑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공식적으로 제자요 사도로 부름받았다면 그 첫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첫 말씀은, 앞으로 나를 따라 살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미리 알려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누가복음은 네 부류에게 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자입니다. 단순히 부자라서 화가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들이 왜 부요하고 왜 배부르고 왜 웃고 있습니까. 사람에게서 이미 다 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채워야 할 것을 사람에게서 채운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이미 위로를 받아 더 이상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 없어진 사람들입니다. 언플러깅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라 쇼츠와 릴스와 게임과 사회적 성공과 부와 명예로 풀플러깅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배가 불렀으니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이 무섭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높임을 받으면 오히려 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함부로 칭찬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권위자에 대한 인정욕구가 있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경우 그 욕구가 훨씬 강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칭찬으로 채워 주는 순간 마음이 부해져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교회 나오는 이유가 사역자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됩니다. 반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으면 교회 나오기도 싫어집니다. 사람에게 미쳐서 신앙이고 뭐고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기를 얻는 맛에 들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저 멀리 떨어지는데도 그 위로의 맛에 취해 자기 인생이 망해 가는 줄도 모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저 멀리 떠나가셨는데 본인은 여전히 사람만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화를 부러워하실 분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팔복을 주시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제자들아, 제자의 삶이 녹록지 않지만 그럼에도 정말 복된 삶이란다. 내가 너에게 쏟아부을 그 복이 안 보이니.
제자로 살면 심령이 가난할 일이 투성이일 것입니다. 사탄이 그냥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애통할 일이 투성이일 것입니다. 양이 사고 친 것을 목자가 수습하는데도 정작 본인은 남이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스스로 비수를 꽂습니다. 그 한 영혼 때문에 속이 터지는 심정을 이제 여러분의 제자 때문에 당합니다. 바로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합니다.
온유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나빔의 본래 의미는 가난한 자, 비천한 자, 압제에 방비 없이 버려진 자입니다. 제자로 살면 사면초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여기서 땅은 부동산이 아니라 하늘의 기업입니다. 예수님도 머리 둘 곳이 없으셨으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고라 자손이 당을 짓고 어찌하여 스스로 높이느냐 하며 대항했을 때 모세는 듣고 엎드렸습니다. 성질이 없어서였겠습니까.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묻었고 두 돌판을 던져 깨뜨렸던 인물입니다. 그런 모세가 대놓고 반역하는 자들 앞에서 엎드렸습니다. 이것이 제자도입니다.
갈렙도 그렇습니다. 백성의 불평 때문에 삼십팔 년을 더 돌았지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격이 충분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순복하는 사람, 그가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팔십오 세에 가장 정복하기 힘든 헤브론 산지를 내게 주소서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하늘 상급을 쌓으려 한 것입니다.
영성이 깊다는 것은 무슨 영적 파워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영이 그만큼 맑다는 뜻이며, 말씀을 재보지 않고 단순하게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편하게 순종할 길을 궁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영적인 세계를 보고 그 원리를 파악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혼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에 순수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핑계가 많은 사람, 여러 방어기제로 그것을 하지 못할 이유를 계속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고, 보아도 이상하게 해석합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아침 일찍 떠났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습니까.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이스마엘을 낳았던 사람입니다. 나이 들어 머리가 안 돌아가서가 아니라 머리 굴리는 것이 멍청한 짓임을 잘 알기에 순종한 것입니다.
멍청한 사람이나 편법을 쓰고 곁길로 가려 하고 정도를 걷지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든 말씀을 빗겨 가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과 싸우자는 것입니다. 대결 상대가 되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상대하지 마시고 하나님만 상대하십시오. 그런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 눈이 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일하시는지 그 패턴이 감으로 잡힙니다. 이런 상황에 이렇게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분이 아닌데 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사실상 다 끝난 것입니다. 인생이 풀리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거기서부터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그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도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황금률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가 남에게 한 그대로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그 한 영혼을 대하는 그대로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하다 보면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하나님은 보통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제자로 붙이십니다. 내가 피해의식으로 내 리더와 목자를 힘들게 했다면, 내가 리더가 되었을 때 똑같은 제자를 붙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제자였을 때 자신의 리더가 어떻게 했는지를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제자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리더입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무인도에 홀로 있으면 실천할 대상이 없습니다. 혼자 독대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란 그 관계 안에서 사랑을 배워 성숙한 사랑의 단계로 나아간 사람입니다. 어떤 화평입니까.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일수록 더 챙기고 더 품고 더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신자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봅니다. 그것이 제자의 전도입니다.
마지막은 박해입니다. 소망이 되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셨고 결국 십자가에 죽임당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제자를 세우신 이유가 자기와 같은 클론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는 자는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은 복음을 위하여 집과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받는 집과 형제는 내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어머니라 하셨듯, 혈연을 뛰어넘는 영적 신가족을 얻는 것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다 버리면 소유권은 잃지만 사용권을 얻습니다. 돈은 없는데 주변에서 계속 흘려보내 주십니다. 어떤 분은 쌀을, 어떤 분은 피클을, 어떤 분은 멜론과 빵을 보내 주십니다. 저희 집은 돈만 빼고 다 있습니다.
그러니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영광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 팔복 말씀은 결국 너 이제 큰일 났다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보다 더 확실한 복의 말씀도 없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지고 애통하고 무기력해지고 박해받는 그 길, 세상 눈으로는 손해뿐인 그 길이 하나님 눈으로 보면 하늘의 기업이 쌓이는 길입니다.
이 땅의 것을 붙잡지 말고 하늘의 것을 보고 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이제 곧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목자가 붙고 양이 붙습니다. 그 관계 속에서 여러분은 애통할 것이고 온유해질 것이고 결국 화평하게 하는 자로 빚어질 것입니다.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그 길 끝에 하늘의 상이 큽니다. 우리는 그것 하나 바라보고 가는 사람들입니다.